공지사항

대체육, 차세대 먹거리로 조명[경향신문]

호주 대체육 전문기업 브이투푸드가 만든 햄버거. 프레시지 제공

식물성 단백질로 가공한 식재료
“환경과 건강 위한 소소한 투자”
설문조사 절반 이상 “식감 만족”

국내 시장 200억원 ‘걸음마 단계’
너겟·라면·만두 등 제품 다양화
투자 확대…향후 성장 잠재력 높아

직장인 박모씨(33)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엔 리필숍을 다니며 플라스틱 줄이기에 나섰고, 올해 들어선 간헐적으로 비건식에 도전하고 있다. 박씨는 “비건식은 맛없고 뻑뻑한 음식이라는 막연한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진짜 고기라고 해도 속을 만한 수준이었다”며 “살은 빠지지 않았지만 몸이 한결 가벼워져 건강해진 느낌이 든다”고 했다.

박씨는 “통상적인 고기나 라면 등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싼 게 아쉽긴 하지만 주전부리 등을 줄여서라도 먹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육류를 좋아해 완벽한 채식주의자가 될 생각은 없지만 환경과 건강을 위해 소소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물 만난 대체육 시장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를 중심으로 미닝아웃(Meaning Out·가치소비)이 확산하면서 대체육 시장이 식품산업의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대체육은 식물성 단백질로 고기의 맛과 식감을 내도록 가공한 식재료다. 시장이 활성화된 선진국에선 소·돼지의 세포를 배양해 만든 인공 대체육도 나왔다. 유제품, 해산물 등으로도 대체육 영역은 확대되고 있다.

코로나19가 대체육 시장을 키운 기폭제가 됐다. 미국 축산업계가 코로나19 바이러스 집단감염으로 공장을 폐쇄하면서 육류대란이 터지자 미국인들은 대체육에 눈을 돌렸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지난해 3~4월 미국에서 대체육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265% 폭증했다. 글로벌 대체육 기업인 비욘드미트와 임파서블푸드는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생산설비를 확장했다.

육류대란은 역설적으로 축산업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동물복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미국 CBS 등에 따르면 축산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1만4000여명이 코로나19에 확진돼 54명이 사망했다. 축산업계는 출하처가 없는 농장주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200만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축산업의 윤리 문제가 대두되고 소비자들 의식이 변화하자 타이슨푸드 등 전통적인 육류가공 기업들도 대체육 시장에 뛰어들었다.

■ 비건 너겟·라면·만두도 출시

해외에 비하면 한국은 걸음마를 시작한 수준이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체육 시장 규모는 200억원가량이지만 향후 성장 잠재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소비자들의 인식도 긍정적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 5월 소비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72.6%는 “대체육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도 50.0%에 달했다. 대체육을 먹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63.2%로, 이 중 34.6%는 대체육 맛에 만족감을 나타냈다. 41.2%는 보통, 24.2%는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식품업계도 대체육 사업을 확장하며 제품군을 늘리고 있다. 반응은 나쁘지 않다. 신세계푸드 노브랜드 버거의 대체육 너겟인 ‘노치킨 너겟’은 완판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4월 첫선을 보인 노치킨 너겟은 한 달 만에 10만개가 다 팔렸다. 5월에 20만개를 내놨고, 역시 한 달 만에 완판됐다. 롯데리아의 대체육 버거도 지난해 1월 출시 후 1년 동안 240만여개가 나갔다.

풀무원은 식물성 단백질 개발 사업을 추진하며 비건라면 ‘정면’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농심도 비건 브랜드 베지가든을 만들고, 독자 개발한 대체육으로 만든 ‘속이 보이는 알찬 만두’를 출시했다. 이달 취임한 신동원 농심 회장은 취임사에서 변화와 혁신을 통한 ‘뉴(New)농심’을 만들겠다며 대체육과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신사업 투자를 다짐했다.

밀키트 전문기업 프레시지도 호주의 대체육 전문기업인 브이투푸드와 영업계약을 맺고 대체육 시장에 뛰어들었다. 브이투푸드는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와 공동 개발한 식물성 대체육을 세계에 공급하는 기업으로, 프레시지는 4분기부터 대체육을 활용한 밀키트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윤리적 소비만으로는 수요가 늘지 않는다”며 “채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도록 진짜 고기와 같은 맛을 내면서 영양과 가격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했다.

■ 대체육, 2040년 육류 시장 추월

요즘 재계의 화두가 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도 대체육 생산을 촉진하고 있다. 세계식량기구는 축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 세계 총량의 18%가 될 것으로 추산한다. 교통수단(13.5%)이나 산업 분야(16%)보다 많다. 소고기 1㎏를 생산하는 데 이산화탄소 19㎏이 배출되는 데 반해 감자1㎏를 생산하는 데는 280g이 배출돼, 육류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환경오염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대체육이 2030년 전 세계 육류 시장의 30%, 2040년에는 60%를 웃돌며 기존 육류 시장 규모를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보경 무역협회 전략시장연구실 수석연구원은 “대체 단백질 시장 활성화는 건강과 환경, 동물복지 등 사회·환경 부문의 지속 가능성 중시에 따른 장기적인 트렌드가 될 것”이라며 “유관 산업의 변화를 촉진해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한국도 기업 간 협력 등으로 대체육 기술 경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